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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인문학[돈구석 1열] 위기의 배에서 탈출하라, 마진 콜 🎥



한 금융회사 인력의 80%를 감축한 대규모 정리해고. 회사의 리스크관리 팀장인 에릭(스탠리 투치)은 해고 통보를 받고, 부하 직원이자 신입사원인 피터(재커리 퀸토)에게 USB를 건넵니다. “Be careful”,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말이죠. 그날 밤, 피터는 정리해고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축하 파티에 참석하는 대신, USB 속 파일을 분석하기 시작합니다.


파일 속 자료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회사가 보유한 투자자산(MBS)의 가치가 이미 휴짓조각 수준으로 폭락해, 큰 위기가 찾아온다는 내용이었죠. 

그 위기에서 회사가 감당해야 할 손실은 이미 회사 전체의 가치보다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피터는 상사인 샘(케빈 스페이시)에게 보고하고, 회사에서는 긴급 임원 회의가 소집됩니다. 


새벽에 시작된 회의에서 회장은 날이 밝는 대로 휴짓조각이 된 MBS를 시장에 모두 팔라고 지시합니다. 

이 MBS는 당시 월스트리트의 모든 금융회사가 취급하고 있었습니다. 수익성이 높아 큰 인기를 끌던 상품이었죠. 

이 회사가 MBS를 시장에 대량으로 파는 순간, 폭탄 돌리기와 같은 상황이 시작됩니다. 

그 위험성을 모르는 이들이 너도나도 사려 들겠지만, 머지않아 폭탄이 터지면서 연쇄 부도가 나타나는 거죠.


영화 <마진 콜: 24시간, 조작된 진실>입니다. 



“마진이 하나도

안 남았습니다”


영화 제목인 ‘마진 콜’은 마진(Margin)과 콜(Call)의 합성어입니다. 장사하시는 분들에게 ‘마진’이라는 말 들어보신 적 있죠? 

‘옷 한 벌 팔아도 마진이 얼마 안 남는다’, ‘백반 1인분 팔면 마진이 얼마 남는다’ 처럼 말이죠. 마진은 거래할 때 ‘파는 사람’이 버틸 수 있는 여유 공간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1만 원짜리 옷 한 벌의 마진이 6천 원이라고 하면, 옷 소매점에서는 아무리 할인 판매를 하더라도 4천 원까지는 버틸 수 있겠죠. 

4천 원 밑으로 판매가격이 내려가면 파는 것 자체가 손해가 되기 때문에 거래가 지속될 수 없습니다. 


금융시장에서 마진은 ‘거래증거금’을 의미합니다. 거래증거금은 거래를 확정하기 위해 맡겨야 하는 일종의 보증금인데요. 우리 주변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큰돈이 필요한 부동산 거래(매매, 전세)를 계약할 때 전체 금액의 일부를 ‘계약금’으로 지급하는 것도 거래증거금의 일종입니다. 

최근에 핫했던 빅히트와 카카오게임즈 등의 공모주 청약에서 등장한 ‘증거금’도 거래증거금 중 하나예요. 


모든 거래에서는 거래상대방이 거래를 이행하지 않는 위험, ‘거래상대방 리스크’가 존재합니다. 

부동산 거래를 할 때 계약까지 한 매수인(또는 임차인)이 중도금, 잔금 등을 치르지 않거나 공모주 청약을 통해 주식을 배정받았는데 결제 대금을 내지 않는 것 등이 있겠죠. 증거금은 이 리스크를 막기 위한 담보의 성격이 강해요. 마진을 통해 거래하는 사람이 버틸 수 있는 여유 공간을 만들어두는 거죠.



돈을 더 내 거나

관두거나


거래증거금을 내고 거래했지만, 거래상대방 리스크를 막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볼게요.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50만 원의 원룸에 입주한 세입자가 있습니다. 이 세입자가 매달 50만 원의 월세를 낸다고 했지만, 이 거래를 이행하지 않을 수도 있죠. 이때 집주인은 최소 10개월까지는 참을 수 있습니다. 보증금에서 ‘밀린 월세’ 만큼 깎으면 되니까요.


하지만 10개월을 넘어서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보증금, 즉 마진(거래증거금)이 바닥난 상태니까요. 

집주인은 세입자에게 전화해 증거금을 더 받아내거나, 거래를 청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마진 콜은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거는 전화와 성격이 같습니다. 

증거금(Margin)이 줄어들다 못해, 하나도 남지 않는 수준으로 내려갔을 때 전화(Call)로 이를 알려주는 것을 뜻해요. 


이렇게 마진 콜은 거래상대방이 ‘거래에서 정해진 내용을 충실하게 이행할 수 있을지’가 의심스러워질 때 나타납니다. 

금융시장에서는 파생상품 거래와 같이 규모가 크고 복잡한 거래에서 자주 사용되는 방법이에요. 역으로, 마진이 들어간 거래는 기본적으로 그 위험이 높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일반적으로 마진 콜이 발생한 거래는 그 가치가 현격히 낮아집니다. 뭔가 문제가 생겨서 증거금을 다 깎아 먹은 상황일 테니까요. 

마진 콜을 받은 당사자는 증거금을 더 내 거나 거래를 청산해야 합니다. 만약 증거금을 더 내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거래의 가치가 낮아져 있다면 청산할 수밖에 없겠죠.


영화 속 장면으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신입사원인 피터가 발견한 게 휴짓조각이 된 투자상품에 대한 자료라고 했죠. 

당시 그 금융회사가 엮여있던 거래의 마진이 바닥나, 한 발만 늦어도 회사에 큰 손실이 확정될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새벽 중에 긴급 미팅이 잡히고, CEO가 헬기를 타고 회의장에 급하게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현실은

상상 그 이상


이 영화 같은 일이 최근에 우리나라에 발생했습니다. 올해 초, 코로나19 사태로 각국 증시가 붕괴할 때의 일이었죠. 당시 증권사들이 보유하던 ELS의 가치가 폭락했습니다. 문제가 된 ELS는 주로 해외 주요 지수의 성과에 연동돼, 지수가 일정 범위 이내에서 움직이면 투자자가 수익을 내는 투자상품이었습니다.


ELS의 가치가 폭락해 해외 증권사가 국내 증권사에 마진 콜을 걸면서 어마어마한 손실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한때 국내 대형 증권사가 파산하는 거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기도 했었죠. 자칫 대형 금융위기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영화 <마진 콜: 24시간, 조작된 진실> 속에 마진 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나오진 않습니다. 그보다는 마진 콜이 임박한 급박한 상황에서 금융회사가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집중한 영화거든요. 영화 속 한 직원이 금융회사에 대해 탐욕적이라고 비난하자, CEO는 이렇게 답합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부자와 빈자의 비율은 언제나 일정해왔다.

그렇다면 부자가 될 것인가 빈자가 될 것인가”


영화 속 대사지만 금융시장 속 탐욕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는 문장이죠. 

이 영화는 금융회사의 탐욕뿐만 아니라 우리와 같은 일반 투자자들의 욕망까지 건드리고 있습니다. 

금융위기가 터지기 하루 전, 급박하게 돌아가는 이야기와 함께 우리가 성찰해야 할 것들을 던져주는 영화 <마진 콜: 24시간, 조작된 진실>. 

오늘 말씀드린 내용을 알고 영화를 보면 더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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